19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경영 전반에 변화와 쇄신을 이끌었다. 제2의 도약기반을 다지기 위해 사명을 성진기공주식회사에서 ㈜SJM으로 변경했다.
1990~1996. 성진기공 CI
1996.11. 회사명 (주)SJM으로 변경
이에 앞서 기존 사훈인 ‘성실 근면, 인화 단결, 창의 개발’을 ‘정직, 노력, 봉사’로 바꾸었다. 이어서 21세기 세계 속의 첨단 벨로우즈 기업으로 도약하려는 의지를 담아 새로운 CI를 확정했다. 1997년 2월에는 투자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으며 주식을 상장했다. 기업을 투명하게 공개해 누구나
인정하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결단이었다.
1997.02.12. 증권거래소 상장
전사적 차원에서 추진한 경영혁신운동인 ‘하나로(HANARO) 2000’은 세계를 주도하는 일류 벨로우즈 기업으로의 성장을 목표로 삼았다. 경영혁신 운동과 함께 부서 간 원활한 소통을 위한 대부(代父)제도를 도입해 조직 활성화를 이뤘다.
1994.11. '하나로 2000' 운동 안내서
'하나로 2000' 운동의 의미
SJM은 새 밀레니엄을 앞두고 초일류 기업을 목표로 혁신과 창조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새 슬로건을 ‘Surf the Wave’로 정했다. 21세기에 들어서는
전 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21세기 비전 선포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꿈과 사랑이 공존하는 세계적인 기술전문기업’이란 비전을 발표하고 미래를
향해 다시 한번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21세기 비전 실현을 위한 5대 전략
1997년 11월에 터진 국가적 경제난은 SJM을 비껴가지 않았다. 환율 폭등과 금리 상승 등의 여파로 인해 매출액이 뚝 떨어졌다. 경영진은 곧바로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가고, 임직원들은 위기 돌파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다. 그나마 다행히 대기업과의 계약이 성사되고, 수출 물량이 증가세를 보이면서 안정세를 찾았다. 무엇보다 해외 자동차업체들로부터 대규모 수주에 성공해 오히려 환차익을 얻고 불황의 파고를 넘을 수 있었다. 위기로 기회로 삼은 SJM은 외환위기로 인한 불황을 2년 만에 극복하며 수출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2000년대 초반 국내에서의 시장 점유율은 추격 자체를 허용하지 않았다. 자동차용 플렉시블 튜브 시장에서는 90% 가까운 점유율을 기록했다.
산업용 벨로우즈 부문에서 건축용 제품은 70%대를 차지할 만큼 앞서갔다. 플랜트용 익스팬션 조인트도 60% 이상을 점유하는 실적을 올렸다. 세계
무대에서는 미국의 플렉소닉스와 독일의 비츠만과 함께 어깨를 견주며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2004년 기준 세계시장에서 자동차용 벨로우즈의
점유율은 25% 정도를 차지했다.
SJM의 벨로우즈 제품군이 국내외 시장에서 맹활약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제품 성능을 끊임없이 향상시키고 가격경쟁력을 높인 것이 주효했다. 플랜트 부문은 외환위기 이후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해외 기업들과 계약하는 데 필요한 각종 인증을 획득해 기술력과 품질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LNG 운반선용 익스팬션 조인트의 국산화에 성공한 이후 국내 조선사를 비롯한 공기업과 해외 조선업체들로부터 공급 계약서를 받았다.
자동차부문도 유럽지역 자동차업계가 요구하는 품질 인증을 획득하며 부품 공급라인을 확대했다. 해외 자동차업체들은 SJM의 부품에 대해 엄지
손가락을 추켜세우며 제품 수급을 위한 상담 테이블을 마련했다. 이전부터 인연이 깊었던 포드를 비롯해 GM, 피아트, 폭스바겐, 토요타 등 세계적인 자동차업체나 부품업체들과 연이어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1995년 12월 부설연구소를 설립한 이후 연구인력을 강화하고 첨단장비를 속속 들여왔다. 2000년대 들어서는 R&D 부문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비용을 투자했다. 2004년 2월에는 기술연구소를 준공해 기술력 강화와 미래 성장동력 찾기에 나섰다. 세계시장에서 기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R&D를 강화해야 한다는 경영진의 전략적인 판단 때문이었다.
1990년대 기술연구소
기술연구소
품질력 향상에 맞춰 해외 공급망 확충
작지만 강하고 전문화된 세계적 기술기업으로의 성장을 목표로 삼았다.
국내에서는 부품시장을 선도하며 국가경제와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기업으로 거듭났다.
해외시장에서는 세계적인 업체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며 우리의 기술과 가치를 널리 알렸다.
해외시장 개척의 첨병 글로벌 네트워크
세계 자동차업체들은 2000년을 전후로 한층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주요 업체들이 월드카 시장을 놓고 격전을 벌이면서 SJM의 입지도 넓어지고 탄탄해졌다. SJM은 기존 제품을 업그레이드하는 동시에 고객을 향한 마케팅을 강화했다. 직접 수출을 확대하는 한편, 해외 현지법인을 확충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포드는 SJM에 월드카 프로젝트에 참여할 것을 제안했고, SJM은 포드의 C-170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했다.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서 SJM은 포드와
협의한 끝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공장을 건립할 것을 결정했다. 이에 앞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는 자동차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각종 혜택을 제시하면 관련 업체 유치를 추진하고 있었다. SJM은 포드,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와의 협의와 함께 현지 상황을 고려한 뒤 두 번째 해외법인인
남아프리카공화국법인을 1997년 3월 설립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법인은 SJM이 100% 단독 투자한 현지법인이자 우리나라 부품회사로는 처음으로 현지 공장을 설립한 사례였다.
1996. 남아프리카공화국(SJM SA) 합작법인 설립 추진
남아프리카공화국법인(SJM SA)
남아프리카공화국법인 다음으로 설립한 곳이 미국 현지법인이다. 미주지역에 부품 공급량이 늘어난 데다 포드를 비롯한 대형 자동차업체의 각종
프로젝트에 대한 대응 능력을 확보할 필요성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미국법인은 2001년 6월 공식적인 출범을 알리고 글로벌 네트워크의 일원으로
영업활동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