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I.

회장 인터뷰

김용호 회장에게 듣는 SJM 50년의 여정

사람과 기술, 부품과 산업을 연결하다

1970년대는 우리나라 기반산업이 너무 취약했던 시기였다. 주요 부품들 대부분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고, 부품 국산화에 대한 의지와 함께 성진기공이 창업했다. 성진기공은 SJM으로 거듭났고, 최고의 품질력을 갖춘 벨로우즈 전문기업으로 자리 잡으며 50년의 역사를 쌓아가고 있다. 50년의 여정을 돌아보며 김용호 회장은 새로운 미래를 향한 지도를 그리고 있다.

김용호 회장 이미지
SJM의 존재 이유,
벨로우즈

SJM의 50년은 파고듦의 시간이었다. 우물을 파듯 연결의 기술 개발에 쏟아부은 몰두의 결과 우물은 깊이에 그치지 않고 넓은 호수로 변해갔다. 건축용 배관에서 자동차 배기계용 벨로우즈로, 다시 첨단과 차세대 부품으로 국산화의 폭을 넓혔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희망을 기술로 실현하고, 최고의 품질력을 갖춘 부품을 세계 산업계의 발전으로 연결했다. 벨로우즈 전문기업이란 수식어가 따라붙었고, 글로벌 강소기업이란 명칭도 얻었다. 자연스레 대한민국을 넘어 유럽, 미주, 중국, 동남아, 아프리카까지 시장점유율을 높였다. 이것이 SJM 50년의 묵직한 여정이다.

Q SJM의 50년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그 여정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사 편찬의 의미를 말씀해주세요.
A 기업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지만, 난 창업할 때 뭔가 이정표 같은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의지가 더욱 컸습니다. 성진기공을 창업하던 1970년대는 우리나라 기반산업이 너무 취약했고, 중요한 부품은 일본이나 미국에서 사다가 쓰는 게 당연한 시기였습니다. 그 당연한 상황이 기계공학을 공부한 엔지니어인 저로서는 수긍하기 어려웠어요. ‘왜 사다 써? 국산화하면 되지!’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지난 50년은 처음, 그 초심을 지켜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사사 편찬은 그 과거를 돌아보고, 어떻게 성장을 했는지를 우리 직원들과 함께 공유하는 일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 직원들이 회사의 일원으로서 회사의 발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회사가 성장하기까지 신세를 진 이해관계자들도 많습니다. 세계적인 자동차업체인 고객사가 대표적입니다. 그분들에 대한 인사, 그리고 감사의 의미도 담고 싶었습니다.
Q 창업 당시 첫 국산화 부품으로 벨로우즈를 선택했고, 이후 벨로우즈 전문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어떤 의미이고 어떤 존재인가요?
A 성진기공을 창업하기 전 설비회사를 몇 년 운영했어요. 그러다가 우리 기술로 우리 제품을 만드는 사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때 찾은 것이 벨로우즈였습니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 꼭 필요한 부품인데, 제조 기술만 있으면 소자본으로도 도전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생각처럼 기술 개발이 순탄치는 않았어요. 당시 정부 산하 연구기관이 유명한 공과대 교수가 참여하는 벨로우즈 개발을 국책사업으로 진행했는데도 결과물을 내지 못했습니다. 그걸 우리가 진행하면서 결과적으로 생산에 성공했습니다. 수입해서 쓰던 것을 국산화해야겠다는 의지가 컸기 때문입니다. 그 후 벨로우즈와 함께 50년을 보냈고, 자동차를 넘어 건축, 항공, 군용까지 다양한 플랜트 분야로 사업을 확대했습니다. 앞으로도 벨로우즈라는 초심은 변함없이 SJM의 존재의 이유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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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기반산업이 척박한 시대에 기술기업을 지향하는 신념에는 난관이 따랐을 것입니다. 위기의 순간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A 1975년 성수동에 성진기공을 창업하고 얼마 뒤 반월공단이 조성 되면서 정부가 수도권 중소 제조업체들의 이전을 권했어요. 성수동에도 중소기업이 많았는데 주요 설득대상이었고, 우리에게도 이전을 권했습니다. 우리는 사업이 소규모였고 제품도 인지도가 낮아 공단에 입주해서 일정 규모의 공장을 짓기에는 시기상조였지만 정부 정책에 부응해 이전을 결정했습니다.

결국 초창기에는 제품을 팔아서 빌린 정부지원금 이자 갚기도 벅차 고생 많이 했지요. 이때 우리 회사 최초이자 마지막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그 추운 겨울 난방도 하지 않고 1~2년을 버티면서 위기를 넘겼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남들 힘들다는 IMF 외환위기 때는 수출기업으로 변모하면서 환율 때문에 오히려 덕을 봤습니다. 오히려 해외시장에서 공급망을 확대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Q 반월공단에서 초창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었습니까?
A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도 품질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품질경영, 품질운동이 시작되면서 제조업 분야를 대상으로 전국 품질 분임조 활동을 정부에서 권장했고, 우리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전국대회에서 수상도 했습니다. 반월공장 이전 후 직원들의 공동체 의식이 상당히 강하던 때였습니다. 오래 회사에 다닌 직원들이 지금도 그 시절이 좋았다고 얘기를 합니다.

저 역시 권위 대신 ‘이런 것을 같이 해야 먹고산다, 물건을 함께 열심히 만들어야 한다’라면서 현장에 나가서 일하고, 어려운 게 생기면 봐주고 어울리며 힘든 시간을 함께 견뎠던 것이 원동력이었습니다.
Q 평소 회장님께서 ‘기술만이 살길’이라고 하는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A 기술기업의 숙명입니다. 내가 현업에 있을 때는 대학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책도 보고 정보를 수집하면서 앞서갈 수 있는 기술을 습득했는데, 현재의 기술 속도는 훨씬 빠르고 복잡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벨로우즈만큼은 세계 정상급이라고 자부하지만, 기술이 앞으로 또 어떻게 변화할지 몰라요. 산업의 패러다임은 계속 바뀝니다.

30주년만 해도 기쁘게 맞이했습니다. 마침 그때 비전 선포식이 있던 해라 제법 규모 있게 행사를 했어요. 50년을 맞이한 지금은 걱정이 더 많아서 행사를 최대한 작게 하자고 했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지난 50년은 우리가 아는 범위 안에서 기술로 열심히 해왔는데, 제조업 환경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고 분야도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지요. 거기서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 이런 고민으로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기업의 생존 조건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한때는 전 세계를 호령하던 기업이 어느 순간 시대정신에 뒤떨어지면서 소멸의 길을 걷기도 한다.
노키아의 몰락, 소니의 추락 등 그 예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창립 50주년을 앞두고 창업자는 그 염려를 놓지 못한다. 하지만 지난 50년의 관록과 역사는 SJM이 생존의 돌파구를 찾아낼 것이라는 긍정적 신호가 될 것이다. 벨로우즈라는 제품에 모든 것을 걸어 글로벌기업으로 인정받았던 것처럼.

Q SJM은 외형적인 규모를 떠나 글로벌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회장님이 생각하는 글로벌기업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A 우리 회사가 규모는 작지만 ‘글로벌 컴퍼니’라고 자부한 것은 닛산의 부품 자회사 칼소닉과 합작회사를 만들어 ‘월드카’에 부품을 납품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국내를 넘어 세계시장에 판매하는 월드카 부품개발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그 순간 우리 회사가 세계화라는 전환기를 맞았고, 기업가로서 가장 보람됐던 순간입니다. 어느 날인가 칼소닉의 ‘오노’ 회장에게 글로벌기업의 조건을 물었어요. 그런데 오노 회장이 닛산이 가는 곳을 따라가는 닛산 자회사인 칼소닉이 아니라 칼소닉이 투자한 SJM이야말로 글로벌 회사라고 하더군요. SJM은 특정 자동차업체에 속한 기업이 아니라, 벨로우즈라는 제품으로 세계시장을 독자적으로 개척하는 회사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우리의 자체 기술로 제품을 개발하고, 우리만의 정도경영을 전면에 내세워 세계시장을 개척하고 투자하는 것, 그것이 글로벌기업의 요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글로벌기업은 결국 세계시장을 개척하는 성과로 판단하기도 합니다. 현재 8개의 해외법인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에 대한 자부심도 크실 것 같습니다.
A 해외법인은 필요에 따라 설립하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는 독자적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확대하기 위해 현지법인을 설립했습니다.
현대자동차의 예를 들면 예속된 자회사는 물론 여러 부품회사가 현대차를 따라가거든요. 반면 우리는 일본 차, 미국과 유럽 차까지 다 참여하면서 이들의 니즈에 맞춰 진출합니다. 다만 다른 기업과 차이는, 해외에 법인을 설립하고 자국의 책임자를 보내는 방식이 일반적인데, 우리의 원칙은 현지에선 현지의 책임자를 쓴다는 것입니다. 해외법인을 설립할 때마다 원칙을 지켰어요. 실제로 성과가 있습니다. 사실 남아프리카 공화국법인은 독자적으로 해외에 진출한 첫 해외법인이라 애착이 큽니다. 포드가 월드카 프로젝트를 맡기면서 제시한 일종의 옵션이었습니다. 아프리카라는 선입견 때문에 반대도 있었지만, 설립 과정에서 꼼꼼하게 자료를 모으면서 성공적으로 독자적 진출을 해냈습니다. 글로벌 네트워크의 시작이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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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독자적인 해외시장 개척은 역시 기술의 힘일 것입니다. 앞으로 SJM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A 벨로우즈를 생산하면서 세계시장에서 1~2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 첫 원천은 기술이라는 경쟁력입니다. 다음이 가격 경쟁력입니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가격이 비싸면 팔 수가 없으니까요. 다음은 이를 실제로 구현하는 품질 경쟁력입니다. 아마 이런 원칙을 지켰던 것이 오늘 SJM을 있게 한 힘일 것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SJM의 매출과 성장이 정체된 것입니다. 우물은 깊어졌지만, 새로운 영역에 일찍 눈을 돌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잘하는 것에 집중하자는 장인 정신 때문이라 이해받기를 바랍니다. 현재는 사업다각화를 위해 씨를 뿌리고 있는데, 내실 있는 기업을 꾸리자는 생각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래도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SJM은 양심적인 기업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업과 기업가의 도리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습니다. 이는 미래에도 지켜나가야 할 중요한 덕목일 것입니다.
글로벌의 조건,
독자노선의
선택과 개척